
결코 아들들을 믿지 마라. 살아있는 동안에 아들들에게 친밀하게 대하지 마라

무굴 제국의 통치자 아우랑제브는 위와 같은 기록을 남겼는데…
이번 글에서는 그러한 아버지를 상대로
정말로 꾸준히 반역을 도모한 아들의 이야기를 소개해 보려고 해

아우랑제브는 모든 면에서 한창일 때부터 이미 아들의 반란에 시달려야 했는데…
평생에 걸쳐 그를 가장 괴롭힌 아들은 단연 차남 무아잠이었어
이 아들은 아우랑제브가 황제가 된 지 12년이 지났을 때부터 반역을 꾀하기 시작하는데…
측근들의 부추김과 무굴 제국의 적 마라타 왕의 꼬드김을 등에 업고
스스로 황제로 선언하려던 그의 음모는 사전에 발각되었지…
아들의 반역에 아버지는 당연히 분노했는데
무아잠을 낳은 황비가 아들을 찾아가서 눈물로 설득하여 그를 아버지 앞에 데려다 놨고
아들은 아버지에게 사죄하였어
그렇게 첫 번째 반역은 어정쩡한 화해로 마무리되었는데…
무아잠은 궁정에서 감시를 받으며 여러 해를 지냈지…

하지만 무아잠은 본인이 황위를 잇지 못할 것을 두려워했고(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는 게 무굴 제국에서 황위에 오르지 못한 황자의 운명은…) 10년 뒤에 다시 아버지에 맞서 내란을 일으켰어
하지만 또다시 실패하였는데
아우랑제브의 처분이 나오기 전에 먼저 어머니의 눈물 어린 호소와 함께 석고대죄하여 목숨을 부지했지

3년이 지나고
아우랑제브는 궁에서 연금 상태에 있던 무아잠에게 데칸 지방에서 일어난 폭동을 진압할 것을 명하였어
하지만 모처럼 황궁과 아버지의 눈에서 벗어난 그는
데칸의 폭동을 진압하기는커녕 폭도들과 내통하다가 또다시 아버지에게 들키고 말았지…
적들과 음모를 꾸미는 무아잠의 편지를 손에 넣은 아우랑제브는 한동안 고민했지만…
다시 아들을 풀어주는 것으로 아픈 마음을 정리했어
그러나 무아잠은 또다시 그 아버지를 상대로 배신의 깃발을 들었고…
아우랑제브도 결국 폭발하였어
다만 그래도 아들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무아잠을 감옥에 가두었고
아무리 더워도 찬물을 주지 말 것이며 좋은 음식도 제공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지…
무아잠은 그렇게 7년을 감옥에서 죄수로 살아야 했지만
1695년 아버지는 20년 넘게 자신에게 불효한 아들을 다시 용서하였어
물론 아우랑제브는 이 믿을 수 없는 아들을 감시하였지만
무아잠은 오랫만에 가족과 함께 살았고
자신과 아들에게 내려진 군사 활동 금지 기간이 끝나자 카불의 총독으로 부임하게 되었지…
아우랑제브는 아들들에게 결코 친밀한 아버지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반역을 거듭한 아들을 끝내 죽이지는 않았는데
아우랑제브 그 자신도 아버지를 몰아내고
형제와 사촌을 숙청하고 황위에 올랐기에
무아잠의 야망을 이해한 것으로 보는 해석도 있어…
* 또 혹자는 아우랑제브의 인내를 그가 아들에게 주는 마지막 사랑이었다고 평가하기도…

선대로부터 자신의 대로 이어진 골육상쟁의 아픈 역사를 끝내고 싶었던 아우랑제브는 세 아들에게 제국을 삼등분 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는데…
카불에서 그 소식을 들은 무아잠은 급히 수도 델리로 귀환하였고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형제들을 숙청하였던 것처럼
무아잠도 형제들을 죽이고 황위(아우랑제브의 장남으로 아메드나가르에서 황제 선언을 했던 무하마드 아잠 샤도 그에 의해 처리됨)를 차지하였지
* 이 근성의 반역자 무아잠이 바로 무굴 제국의 8대 황제 바하두르 샤 1세이므로 참고 요
*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