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로 가보자. 독일 제국이 통일된 뒤, 유럽의 판도는 완전히 뒤흔들렸어.
그 중심엔 빌헬름 2세라는 강력하고도 불안한 인물이 있었지.
그는 전임자 비스마르크와는 달리 조심스럽게 외교의 줄을 타기보다는, 제국주의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

다른 열강들, 특히 영국과 러시아는 이런 독일의 돌진을 마냥 지켜보고 있을 수 만은 없었어. 그래서 선택한 수단 중 하나가 바로 혼인 동맹 이였거든

1894년,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 알렉산드라가 결혼을 하게 돼. 알렉산드라는 독일계 귀족이었지만 영국 왕실과도 깊은 연줄이 있는 인물이었지.

이 결혼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어. 독일의 팽창을 견제하려는, 매우 계산된 정치적 결합이었지. 영국과 러시아는 이 결혼을 통해 유럽에서의 공동 대응 가능성을 시험하고 싶었던 거야.
니콜라이가 황제가 되고, 알렉산드라는 러시아 황후가 되었어. 그녀는 러시아 궁정에서 독일식 문화를 고수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 내에서의 반독일 감정을 부추기는 데 일조하게 돼.
결과적으로, 이 혼인은 단순한 두 왕가의 통합을 넘어, 러시아와 영국이 마음을 맞춰 독일의 독주를 견제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게 했지.
바로 이 혼인이, 후일의 삼국 협상—영국, 프랑스, 러시아 간의 연대를 준비하는 정신적 토대가 되었던 셈이야. 외교 문서에 공식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각국 지도자들 사이엔 “우리가 하나가 될 수도 있다”는 정서적 기반이 생긴 거지.
하지만 이 혼인의 그림자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야. 시간이 지나면서 알렉산드라 황후는 점점 정치적으로 고립되었고, 러시아 황실 내부에도 불신이 커졌어.
그녀가 신뢰한 인물, 라스푸틴은 궁정 내 혼란의 씨앗이 되었고, 러시아 국민들 사이엔 황후에 대한 불신이 커져갔지.

결과적으로 이 결혼이 기대했던 안정 효과는 점점 사라지고, 오히려 제정 러시아의 몰락을 앞당기는 데 일조하게 돼.
지정학적으로 보면 이 결혼은 러시아의 서진 전략과 영국의 해양 패권 전략이 절묘하게 맞닿은 순간이었어.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 대륙의 균형을 다시 맞추기 위해, 두 나라는 이 혼인을 통해 서로에게 다가갔지.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축에서 독일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려는 상징적 연결 고리였던 거야.
하지만 이 결혼 만으로는 전쟁을 막을 수는 없었어. 1914년,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이 동맹은 곧 현실 속 군사적 충돌로 번지고 말았지.
5줄 요약
1. 1894년,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와 영국계 하노버 출신 알렉산드리아의 혼인은 독일 제국 빌헬름 2세의 팽창주의를 견제하려는 전략적 동맹이었다.
2. 이 결혼은 삼국 협상의 심리적 기반이 되었으며, 영국과 러시아의 지정학적 이해가 일치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3. 그러나 알렉산드라 황후의 정치 개입과 라스푸틴 문제는 러시아 제정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4. 혼인 동맹은 한때 세력 균형을 위한 유효한 수단이었지만, 전쟁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5. 이는 유럽에서 혼인이 외교와 지정학의 중요한 도구였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