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승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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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라는 영화 봤어? 이거 바둑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야.

대국 장면에서 사람들이 반응하는 걸 엄청 잘 살려놔서, 바둑 룰을 몰라도 뭔가 긴장감 있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느낌이 팍팍 오거든.

스토리도 깔끔하게 흘러가는데, 진지한 주제라 무거울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아서 부담 없이 볼 수 있어.

이병헌이 이 영화에서 조훈현 역을 맡았는데, 진짜 이 형 지금 커리어 최고인 거 같아. 데뷔한 지 30년 가까이 됐잖아, 근데 2020년대 들어서 더 미쳐버린 느낌?

<콘크리트 유토피아>나 <우리들의 블루스>, <오징어 게임>에서도 엄청난 연기 보여줬는데, 여기서도 역시나다. 진짜 연기 경지가 다른 차원에 간 느낌이야.

그리고 유아인이 이창호 역으로 나오는데, 와… 사건사고 좀 있었던 건 맞지만 연기력은 뭐라 할 말이 없어. 악마의 재능 그 자체라니까.

이병헌이랑 맞붙어도 전혀 안 밀리고, 그 나이대 배우 중에 이병헌 에너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또 어린 이창호 맡은 김강훈이란 애도 깜짝 놀랄 정도로 잘해.

나 시리즈물 잘 안 봐서 걔를 몰랐는데, 여기서 연기 보니까 진짜 충무로의 희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들더라.

바둑이 워낙 무거운 소재라 영화가 진지할 수밖에 없는데, 코미디 요소를 잘 섞었어.

조훈현 주변 인물들, 천승필이랑 이용각 같은 애들이 분위기 띄워주고, 이병헌도 깨알 같이 웃긴 장면 만들어서 좋았어.

진지한데 심각하지 않고, 유쾌한데 유치하지 않은 그 균형이 딱이야.

그리고 이 영화 되게 정직해. 억지로 갈등 집어넣거나 로맨스 끼워 넣어서 흐름 망치는 거 없거든. 보면서 ‘아, 이 영화 믿고 볼 수 있겠다’ 이런 느낌 팍 와.

사실 이 영화는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는 이야기가 아니라, 스승이 제자에게 추월당하면서 내면적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야. 그러니까 진짜 주인공은 조훈현이지.

이창호는 겉으로 변하는 캐릭터라면, 조훈현은 속으로 큰 변화를 겪는 인물인 거야.

마지막에 조훈현이 ‘무심’을 쓰고, 이창호가 ‘성의’를 쓰는 장면 있잖아.

예전에 창호한테 성의를 다하라고 화내던 훈현이 무심을 선택하고, 무심하게 두던 창호가 성의를 택하는 그 교차가 되게 묘하고 멋지더라.

영화의 핵심이 거기 있는 느낌?

근데 좀 촌스러운 부분이 눈에 띄긴 해. 이창호 할아버지 나올 때마다 대사가 너무 옛날 스타일이라 어색하고, 초반 내레이션도 대하드라마 느낌으로 너무 무겁게 들어가서 좀 별로였어.

왜 굳이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네.

조훈현이 망가지는 장면도 좀 뻔해. 비 오는 밤에 술 취해서 비틀대다가 토하는 장면? 진짜 너무 스테레오타입이라 아쉽더라. 좀 더 신선하게 연출했으면 좋았을 텐데.

최종 대국 설명도 좀 늘어져.

바둑 모르는 사람 위해서 자세히 풀어주는 건 알겠는데, 중계하듯이 너무 길게 가니까 지루해지더라. 중반에 나온 첫 대국 장면은 엄청 긴장감 넘쳤는데, 마지막은 그에 비해 좀 약했어.

그래도 <승부>는 진짜 잘 만든 영화야.

바둑 그 자체를 넘어서 승부와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풀어냈고, 이병헌, 유아인 연기는 말할 것도 없지.

바둑 몰라도 충분히 몰입해서 볼 수 있어. 내레이션이나 마지막 대국 해설 부분은 살짝 넘기고 보면 딱 좋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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