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준경 | 한반도 역사상 최강의 맹장 소드마스터

척준경은 한번씩은 다 들어봤을 거이다.

우리나라 역사에는 대부분 지략이 높은 장수들은 유명하지만, 무력으로 뛰어난 장수들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무력으로만 보았을때,
항우, 여포와 비교할 수 있는 소드마스터이다.

이 척준경이라는 장수는 한반도 역사상 역사서를 찾아봐도 이보다 용맹한 장수는 없을것이다.

특히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가 맡았던 김신은 척준경을 모델로 하였다는 설도 있다.
또한 육룡이 나르샤에 나왔던 곡산검법의 척사광 역시 척준경의 제자이다.

척준경 도깨비
척준경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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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마스터 탄생

곡산에서 가난한 향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려의 향리는 맨 위의 호장부터 여러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고 호장, 부호장 쯤 되면 지방의 유력자로 상당한 권세를 가지는데 척준경은 집안이 가난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호장급이 아닌 일선 행정업무를 담당한 하급 향리 집안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의 지방제는 수령이 있든 없든 현에 행정업무를 보는 향리들이 따로 존재했기 때문. 어려서부터 학문보다는 무술 연마를 더 좋아했는데 과거에 무과가 따로 없던 고려 시대, 그것도 가난한 집안에서 무술에 뜻을 두다보니 아무래도 무뢰배들과 친해지기 쉬웠다.

나이가 들어 아버지의 직책을 이어받아 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한동안 떠돌이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이리저리 떠돌던 중에, 경주로 흘러들었고 고려 11대 왕 문종의 3남 계림공 왕희의 집에 종자로 들어가게된다.

나중에 그와 이런저런 인연으로 얽히게 되는 고려 인종은 숙종(왕희)의 손자가 된다. 이래저래 척준경과 왕실은 인연이 많았던 셈. 이때의 인연으로 왕희가 어리고 몸이 약했던 14대 헌종을 대신해 왕위에 올랐을 때(사실상 찬탈) 추밀원의 말단관원으로 들어가 시설 점검, 행사 준비 같은 잡일을 하며 지냈다.

소드마스터가 된 전쟁기 무쌍 활약

숙종 9년(1104)에 평장사(平章事) 임간(林幹)을 따라 동여진(東女眞)을 정벌하였는데, 아군이 패배하자 척준경은 임간에게부탁해 무기와 갑옷 입힌 말을 얻은 다음 적진으로 돌진해 적장 한 명의 목을 베고 아군 포로 두 명을 되찾았다.

그런 뒤 교위(校尉) 준민(俊旻)·덕린(德麟)과 함께 활을 쏘아 각각 한 명씩을 거꾸러뜨리자 적들이 약간 물러났다. 척준경이퇴각하는데 적 1백기(騎)가추격해오자 또 다시 대상(大相) 인점(仁占)과 함께 적장 두 명을 사살했다. 적들이 전진하지 못하는 틈을 타 아군은 무사히 성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여진군의 완강한 저항을 뚫지는 못했다.

공격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자 윤관은 용감하기로 이름난 장수 척준경을 불렀다.

적진으로 들어간 척.준.경이 적장 여러 명을 죽이는 활약을 펼치자 덩달아 기세가 오른 고려군은 여진군을순식간에 궤멸시켜 버렸다.

윤관과 오연총이 여진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목숨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 적도 있었다.

이를 본 척준경은 아우 준신(俊臣)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0여명의결사대를 이끌고 수만의 적진으로 뛰어들어 적군 10여명을 격살하고 윤관을 구출한다.

적의 보병과 기병 20,000명이 영주(英州)남쪽에 나타나 크게 외치며 도전하니 윤관과임언(林彦)이 상의하기를

“적병은 다수이고 아군은 소수이니 대적할 길이 없다. 그저 방어만 하는 것이 상책이다”

라고 하니 척준경(拓俊京)이

“만일 출전하지 않고 있다가 적병은 날마다 증가되고 성안의 양식은 점점 없어지며 외부의 원조도 오지않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하고 결사전에 지원하는 용사들을 인솔하고성 밖으로 나가 적들과 싸워 19명을 죽이니 적들이 패하여 북방으로 도망쳤다.

왕자지(王字之)가 부대를인솔하고 공험성(公嶮城)으로부터 도독부로 오는 도중에 적의추장 사현(史現)의 군대를 만나 싸우다가 패전하고 그가 타고있던 말까지 적에게 빼앗겼다.

그래서 즉시 힘 센 군사를 데리고 구원하러 가서 적을 격파하고 적에게 빼앗겼던 말까지 탈환하여 가지고돌아왔다.

어느 성에 있을때 성주가

“오랫동안 성을 지키느라고 군량은 거의 다 소비되어 가고 외부의 원조는 오지 않으니 장군께서 만약 성 밖으로 나가서 군사들을수집하여 가지고 돌아와서 구원하여 주지 않으면 성중의 군사들은 아마도 살아 남을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라고 하니 척준경(拓俊京)이 병사의 헌 옷을 입고 밤 중에 줄에 매달려 성을 넘어 정주(定州)로돌아가서 대오를 정돈하고 통태진(通泰鎭), 자야등포(自也等浦)를 거쳐 길주(吉州)에 이르러 적과 만나 싸워서 크게 격파하니 성 안 사람들이 감격하여 울었다.


다른 장수들에 비교해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아쉽다. 한반도에도 무력으로 엄청난 장수가 있었다는 것은 기억했으면 좋겠다.

추가자료 : KBS 역사적 그날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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